주유소에 들를 때마다 "또 올랐나" 싶어 계기판을 흘끔 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마트에서 장을 봐도 예전만큼 장바구니가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으실 텐데요. 그런데 오늘 발표된 물가 통계를 보면 "물가 상승세가 둔화됐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분명 체감은 그대로인데 왜 지표는 나아졌다고 하는 걸까요. 오늘은 이 숫자와 내 지갑 사이의 거리를 한번 좁혀보려고 합니다.

물가지수는 내렸다는데 기름값은 왜 그대로 비쌀까
오늘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9% 상승했습니다. 8월 3.1%보다 0.2%포인트 낮아진 수치입니다. 숫자만 보면 물가 상승 속도가 느려졌다는 뜻이니 분명 좋은 소식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왜 피부로 느끼는 체감은 다를까요.
먼저 소비자물가지수라는 개념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이건 물건과 서비스 가격을 평균 내서 작년 같은 달과 비교한 지표인데, 쉽게 말해 학급 전체 평균 점수와 비슷합니다. 반 평균이 살짝 올랐다고 해서 모든 학생의 점수가 똑같이 오른 건 아니듯, 물가지수가 둔화됐다고 해서 내가 자주 사는 품목의 가격까지 내려간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번 달 둔화는 지난해 8월 휴대전화 요금 감면에 따른 기저효과가 해소된 영향이 컸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작년 8월 요금이 일시적으로 낮아져 있던 탓에 올해 8월 상승률이 유독 높게 나타났다가, 9월 들어 그 왜곡이 사라지면서 숫자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는 겁니다. 즉 통계적인 착시가 걷힌 것일 뿐, 내 생활비 자체가 실제로 가벼워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면 우리가 매일 체감하는 영역, 그러니까 기름값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4.8% 올랐습니다. 이 정도면 한 달에 기름값으로 10만 원을 쓰던 사람이 1만 4천 원가량을 더 내야 한다는 뜻이니, 체감상 결코 작은 폭이 아닙니다. 경유와 등유는 20% 안팎, 휘발유도 10% 넘게 올랐는데, 이렇게 큰 폭으로 오른 이유는 중동 지역의 분쟁이 길어지면서 국제유가가 높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유가는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원유 가격으로, 국내 기름값을 만드는 원재료값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원재료값이 들썩이면 국내 주유소 기름값도 시차를 두고 따라 오릅니다. 마치 밀가루값이 오르면 동네 빵집 식빵 가격도 결국 따라 오르는 것과 비슷한 흐름입니다.
정부가 가격에 뚜껑을 덮어둔 상태라는 걸 아시나요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기름값도 사실 원래보다 눌려있는 가격이라는 점입니다. 석유류 가격은 이미 지난해보다 14.8%나 오른 수준이지만, 정부가 운영하는 가격 상한 제도가 없었다면 상황은 더 심각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제도는 기름값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정해두는 장치인데, 관련 당국은 이 제도 덕분에 전체 물가 상승률이 0.6%포인트가량 낮게 유지됐고, 제도가 없었다면 9월 물가 상승률이 3%대 중반까지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걸 비유하자면 물이 끓어 넘치려는 냄비 뚜껑을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뚜껑을 누르고 있으니 겉으로는 안정돼 보이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물이 끓고 있는 상태인 셈입니다. 손을 떼는 순간, 그러니까 이 제도가 언젠가 조정되거나 풀리는 시점이 오면 그동안 눌려있던 가격 상승 압력이 한꺼번에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당국도 석유류와 농축산물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가를 구성하는 다른 항목들의 움직임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농축수산물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 반면, 공업제품과 서비스 요금은 계속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쉽게 말해 과일이나 채소처럼 장바구니에 바로 담기는 품목의 연간 가격은 내려갔지만, 공산품이나 외식·보험 같은 서비스 요금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개인서비스 물가가 눈에 띄게 올랐는데, 외식비는 물론 병원비, 학원비, 보험료처럼 한번 오르면 좀처럼 다시 내려가지 않는 항목들이 꾸준히 우리 지갑을 누르고 있는 셈입니다. 한 번 오른 학원비나 보험료가 다음 달에 다시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바로 이 점이 '평균은 둔화됐다'는 뉴스와 '내 지갑은 여전히 빠듯하다'는 체감 사이의 간극을 만드는 핵심 이유입니다.
월급 300만 원 직장인이라면 체감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통계는 이해했지만 결국 궁금한 건 "그래서 내 생활비는 얼마나 달라지느냐"일 겁니다. 월급 300만 원을 받는 1인 가구 직장인이 매달 교통비, 식비, 통신비 등으로 생활비 150만 원 정도를 쓴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실제 개인별 지출 구조는 다를 수 있으므로 이는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 가정입니다). 전체 소비자물가는 2.9% 올랐지만 내 지출이 전부 똑같이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게 핵심입니다.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면서 한 달에 기름값으로 15만 원 정도를 쓰던 사람이라면, 석유류가 14%대 가까이 오른 흐름을 그대로 적용했을 때 월 2만 원 안팎이 추가로 더 들어가는 셈이 됩니다. 한 달 커피 몇 잔 값이 조용히 빠져나가는 셈이죠.
여기에 더해 추석 명절을 전후해 체감되는 변화도 있었습니다. 지난달과 비교하면 신선채소 가격은 기상 여건에 따른 출하 감소 등으로 꽤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토마토나 호박 같은 품목은 단기간에 눈에 띄게 뛰었고, 배추도 적지 않게 올랐습니다. 연간 기준으로는 농산물 가격이 내려갔다고 해도, 바로 지난달과 비교하면 명절 수요와 날씨 때문에 채소값이 단기간에 껑충 뛴 겁니다. 장을 보러 간 사람 입장에서는 "분명 물가가 안정됐다는데 왜 배추 한 포기가 이렇게 비싸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연간 평균 지표와 지난달 대비 변화, 그리고 내가 자주 사는 품목의 가격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두시면 뉴스를 볼 때 한결 덜 헷갈리실 겁니다.
생활비를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전체 지표보다 내가 실제로 쓰는 항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챙겨보는 편이 더 현실적입니다. 기름값처럼 변동이 큰 항목은 대중교통 활용 비중을 조금 늘려보거나, 신선채소처럼 명절 전후로 단기 급등락이 있는 품목은 시기를 살짝 비켜서 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체감되는 부담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습니다. 물가 통계는 매달 발표되는 숫자일 뿐이지만, 그 숫자 뒤에 숨은 흐름을 알고 나면 다음 달 장바구니를 꾸릴 때 조금 더 여유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